어릴 때 나는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던진 말 한마디에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별것 아닌 칭찬에 들떠 신났다.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했고 그 감정을 숨길 줄 몰라서 표정과 말투에 다 드러났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눈치를 보거나 나를 더 자극했다. 그때 나는 내 표정으로 나를 드러내는 것이 솔직한 거라고 믿었다. 느끼는 대로 드러내는 게 나를 꾸미지 않는 거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솔직함보다 나를 컨트롤할 줄 몰랐던 것 같다. 솔직함과 미성숙함을 잘 몰랐던 것 아닐까…

그 시절의 나는 내 기분을 늘 외부에 의존하고 있었다. 남의 말 한마디, 그날의 날씨, 사소한 일. 좋은 일이 생기면 행복했고 나쁜 일이 생기면 불행했다. 당연한 것 같지만, 그건 내 행복의 스위치를 늘 남의 손에 쥐여주고 있던 셈이었다. 누가 어떤 버튼을 누르느냐에 따라 나는 오르락내리락했다.

요즘 운동을 하면서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운동만큼 기분에 휘둘리기 쉬운 일도 없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하루 안 한다고 당장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그렇다. 컨디션이 좋은 날엔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고, 조금 피곤하거나 귀찮은 날엔 오늘 하루쯤은 괜찮겠지 하고 미룬다. 가고 안 가고가 전부 그날의 기분에 달려 있는 거다.

핑계는 늘 그럴듯하기 마련이라, 안 갈 이유 하나쯤은 어떤 날에도 찾아낼 수 있다. 예전의 나라면 분명 그 핑계를 붙잡았을 거다.

달라진 게 있다면, 요즘은 기분이 안 좋아도 일단 나간다는 거다.

가기 싫다는 마음 하나로 안 가지는 않는다. 가기 싫은 건 거의 매일 느끼는 감정이고, 그걸 이유로 삼기 시작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한다. 대신 가지 않아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을 때, 이를테면 몸이 정말 상했거나 무리하면 다칠 것 같을 때, 그때만 안 간다. 가느냐 마느냐를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정하려고 한다.

기준과 핑계의 차이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기준은 그 순간이 오기 전에 미리 정해둔 것이고, 핑계는 그 순간에 급하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그 둘을 구별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고, 내 기준을 하나씩 세워가는 중이다.

처음엔 기준을 세우는 게 나를 옥죄는 일인 줄 알았다. 규칙을 만들수록 그만큼 자유가 줄어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보니 오히려 반대였다. 매번 갈지 말지를 기분에 맡기던 때는, 사실 매일 아침 그 작은 고민에 시달렸다. 갈까 말까, 오늘은 좀 봐줄까. 기준이 생기고 나서는 그 고민 자체가 사라졌다. 정해둔 대로 움직이면 되니까.

기분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를 컨트롤한다는 건 나를 억누르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의 기분에서 나를 풀어주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다. 행복은 바깥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거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그 작은 뿌듯함은, 날씨가 좋아서도 누가 칭찬해줘서도 아니었다. 가기 싫은 날에도 내가 정한 기준대로 나를 움직였다는 사실, 그 하나에서 왔다.

외부 조건은 어차피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다. 날씨도, 남의 말도, 그날 벌어지는 일들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거기에 내 기분을 걸어두면 나는 평생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기준을 지켰는지 아닌지는 온전히 내 몫이다.

물론 나는 완벽하지 않다.

아직도 어떤 날은 핑계를 기준인 척 빠지기도 하고, 안 좋은 기분이 표정에 그대로 새어 나오기도 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다. 어떤 날은 한 발 나아갔다가 다음 날 두 발 물러서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그런 날 스스로를 몰아세웠을 텐데, 요즘은 그러지 않으려 한다. 한 번 물러섰다고 해서 그동안 쌓아온 게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넘어진 다음에도 다시 그 기준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넘어지면 안되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져도 괜찮은 사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아는 사람.

그래서 나는 기준을 세우고 지키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려고한다.

내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지키는 것. 기분이 어떻든 그 기준대로 움직여보는 것. 거창한 건 아니다.

다만 오늘 같은 마음으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날에도 나는 운동을 하러간다.

그렇게 운동을 가는 날을 천천히 늘려가보고자 한다.